Chapter 1. 배우의 프로필
정성을 들여야 정성 들여 보게 됩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단 한순간,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대면하는 순간에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첫인상’이라고 한다면, 배우에게 있어서 ‘첫인상’은 대부분 ‘직접 만나기’ 이전에 형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기한 작품에서의 특정 역할이 첫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캐스팅 과정에서의 첫인상은 ‘배우 프로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배우의 프로필을 먼저 본 후 오디션에서 직접 보게 된다면, 첫 대면 때의 ‘첫인상’은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첫인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배우의 프로필(이 쉽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는 ‘첫인상’)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수많은 배우의 프로필을 받아보면서 프로필이 아쉬운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배우분들의 프로필을 보고 놀란 적도 꽤 많습니다. 프로필을 수정하고 오디션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프로필’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사람들이 입시 혹은 취직/이직을 위해 준비를 할 때도 배우들의 프로필 작성과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지원서에 첨부될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 집에서 먼 사진관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죠. 하루 이틀 준비해서 지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지원하는 곳마다 다 다른 버전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넣기도 하고, 한군데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읽고 고치고 또 읽으며 여러 번 수정하기도 합니다. 이 서류들을 작성하기 이전에, 지원 자격을 갖추기 위해 투자한 시간까지 헤아려보면 꽤 많은 노력을 들여야 원하는 곳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배우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갖춰야 하는 재능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민한 자료는 티가 납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티가 나는 것처럼, 연애나 이별을 하면 티가 나는 것처럼, 부모가 되어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져도 티가 나는 것처럼, 양식만 갖춰 급하게 대강 만든 프로필과 내가 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든 프로필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수백수천 장 쌓인 프로필을 넘겨보는 그 캐스팅 담당자가 내 프로필에 시간을 들여 정성껏 봐주길 원한다면, 시간과 공을 들여 고민하고 정성껏 만들어 보길 바랍니다.
[알아두면 유용한 English Tip]
프로필(Profile) 사진을 국어사전으로 검색해 보면 ‘자신을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찍은 사진’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만, 영어사전을 검색해 보면 ‘옆얼굴의 윤곽, 혹은 개요, 약력, 인지도’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권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의 측면 앵글을 찍을 때 ‘profile shot’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배우의 사진과 이력을 합친 양식을 ‘배우 프로필’이라고 부르지만, 영어권에서는 headshot and resume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요즘은 컴퓨터 파일로 보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출력물(종이)의 경우, 앞장은 사진, 뒷장에는 연락처와 연기 경력 등을 기재, 한 장으로 만든 양식이 표준화되어있습니다. 프로필(profile)이라는 단어 자체가 약력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주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캐스팅 과정에서 영어로 ‘profile photo’를 보내달라는 요구가 있다면, 정면이 아닌 ‘측면’ 얼굴 사진도 보내달라는 뜻일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Headshot(헤드샷), 눈을 맞추세요! 당당하게, 덤덤하게.
제가 선호하는, 캐스팅 디렉터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좋은 첫인상’을 남긴 프로필 사진들은 대체로 진짜 ‘그 사람’이 보이고, 저와 눈을 마주치는 정면 사진입니다. 어떤 특정 인물을 연기하거나 연출되지 않은 이미지가 좋습니다. 그 배우의 ‘사람’으로서의 본질, 본연의 매력과 개성이 진솔하게 잘 담긴 사진을 보면 조금 더 오래 쳐다보게 되고 때로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만나보고 싶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실제로 만난 것처럼 ‘눈 맞춤’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요즘은 직업 배우가 아니더라도 단독 프로필 사진을 찍거나 화보 촬영을 진행하는 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이쁘고 멋있게 보정을 거친 ‘잘 나온 사진’들에 우리의 눈은 익숙해졌고, 누구나 스스로 보정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잘 나온 사진’들이라 함은 매우 주관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실물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모가 업그레이드된 화보처럼 ‘잘 나온 사진’을 선호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욕망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다소 과하게 보정된 사진을 보면, 단점을 보완하려다 장점까지 실종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배우의 프로필 앞면에 들어갈 ‘잘 나온 사진’을 고를 때에는 좀 다른 기준으로 선택했으면 합니다.
오디션 당일에 ‘실물 사진’을 찍는 경우를 자주 접하셨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당일 현재 모습을 찍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보정이 없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추후 캐스팅이 되면, 이 사진을 의상, 분장팀에 공유하게 되고, 역할에 맞는 ‘꾸밈’을 구상하는 1차적 바탕이 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물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가 프로필 상 이미지와 너무 확연하게 다르면 프로필과 그 배우를 몇 번을 번갈아 쳐다보며 비교하게 됩니다. 오디션이라는 건 특정 역할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른 역할로 봤어야 하나?’, ‘연령대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포토샵을 너무 했네?’ 등등 ‘저 사람, 사진이랑 실물 느낌이 많이 다르다’라는 의구심을 조금이라도 품는 순간, 배우분의 연기에 100%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냥 ‘잘 나온 사진’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불리함으로 작용될 수도 있습니다.
간혹 메인 프로필 사진으로 옆모습이나 눈을 감은 사진을 넣은 분들이 있는데 패션 화보 같은 옆모습이나, 시선이 정면이 아닌 먼 산을 쳐다보거나 하는 사진들은 멋있을 수는 있지만, 배우 프로필 사진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 참여한 작품의 영상 캡처 사진을 수십 장 나열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비추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캡처 사진을 한 페이지 안에 최대한 많이 넣으려다 보니, 본래 사진의 비율이 망가져 배우 얼굴이 찌그러진 경우가 많고, 페이지당 사진 개수가 많아 산만하게 편집되어 대충 넘기게 됩니다. 사극 분장, 양복핏, 유니폼, 색다른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모습을 빠짐없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짐작이 가지만, 전에 있던 이미지를 수두룩하게 제시하는 건 오히려 배우 본인이 스스로를 특정 이미지로 정형화하고, 전에 없던 작품을 함께 만들어보고자 하는 창작의 의지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페이지에 걸친 수십 컷의 출연작 캡처 사진 릴레이보다 진짜 ‘자신’을 잘 드러낸 사진 한두 장이 훨씬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느껴집니다.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에는, 카메라 렌즈 너머에 머지않아 마주할 그 특정 상대와 실제로 만난 것처럼 ‘눈 맞춤’을 해보세요.
당당하게, 덤덤하게, 누구보다 본인답게. 그러면 그 캐스팅 담당자는 당신의 프로필을 볼 때, 당신을 보는 게 아니라 ‘만날’ 것이고, 처음 대면할 때도 실제로 만나 본 것과 같은 마음으로 눈앞의 당신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추신. 프로필 사진을 찍는 데도 돈이 든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 수입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전적인 고민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잘 찾아보면 여러 커뮤니티에 (본인의 경력을 위해) 무료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공고도 있고, 필요한 배우 몇 명이 모여 부담을 줄일 수도 있고, 아는 사람 소개를 받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옵션 중에서도 본인이 추구하는 방향과 최대한 가깝게 구현해 줄 수 있는 포토그래퍼를 고민하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래도 발생하는 최소한의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연기가 아닌 다른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저는 그것도 배우의 일 중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 간에 연기하지 않을 때의 시간을 슬기롭게 잘 보내야, 연기하는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눈에 쏙 들어오게!
보통 ‘배우 프로필’이라 함은 ‘사진’과 ‘내용’을 합친 양식을 일컫습니다. ‘사진’ 얘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내용’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사진’이 ‘첫인상(이미지)’이라면, ‘내용’은 그 배우의 ‘본질’입니다. 경력 등의 정보를 나열했지만, 이를 통해서 ‘누구인가’를 얘기하는 거죠. 똑같은 내용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1~2장으로 깔끔하게 잘 정리된 프로필(ex. 앞면/사진, 뒷면/내용)은 가독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확연히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집니다. 그에 비해 프로필 촬영한 사진을 모두 다 넣고 모든 경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줄줄이 나열한 여러 장짜리 프로필은 본인을 잘 보여주거나 개성을 부각시키기는커녕 다소 성의 없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로필에 꼭 포함되는 내용들은 이름, 성별, 키, 소속이나 연락처, 경력과 특기, 학력, 나이* 등인데,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잘 정리했을 때 한눈에 쏙 들어오는지, 좀 더 신경 쓰면 좋을 몇 가지 Tip들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일단, 이름과 연락처가 잘 보여야 합니다. 이름은 명확하게 인지될 수 있도록 확연히 큰 폰트를 쓰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메일에 첨부해서 보낼 때에도 파일명에 본인 이름이 꼭 들어가도록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간혹 프로필 검토 중에 사진과 이력 페이지가 분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연락처를 못 찾아서 연락을 못 드린 경우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름과 연락처를 모든 페이지에 상단이나 하단에 반복해서 기입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연락처에는 전화번호뿐 아니라, 이메일도 꼭 표기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맞게 영문 성명*도 같이 표기해 주시면 어떨까요?
연기 경력(Filmography)은 최신작이 제일 상단에 있어야 합니다. 가장 첫 작품부터 순서대로 기입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캐스팅 담당자가 참고로 할 이력은 데뷔작이 아니라, ‘최근작’입니다. 몇 년간 공백이 있었더라도 괜찮습니다. 가장 최근 작품을 제일 위로!
또한 작품 연도, 감독, 포맷, 역할명을 꼭 밝혀주시는 게 좋습니다. 작품 연도와 감독은 동명의 작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할명 기재 여부는 캐스팅을 할 때 아주 큰 참고사항이 됩니다. 종전 작품들에서 먼저 캐스팅한 분들이 그 배우분의 어떤 매력을 간파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제목만 주르륵 나열된 경우 보조출연 이력으로 여겨지기 십상인 반면, ‘상인1’ ‘선생님3’ ‘만취녀’ ‘이웃집 참견남’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아무리 작은 단역이라 할지라도 보다 프로페셔널한 배우의 이력으로 여겨집니다.
특기나 취미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입니다. 예를 들어 시대물을 찍을 때, 옛날 차량-수동 운전이 가능한 분을 찾을 때가 있는데, 촬영 몇 달 전부터 교육할 기간이 충분한 주조연이 아닐 경우, 실제로 특기 때문에 캐스팅이 고려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운동, 무술, 춤, 노래, 사투리, 외국어 등을 많이 쓰시는데 요리병 출신, 지게차 면허, 바텐더, 폴댄스, 프리 다이빙, 스포츠 심판…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쓸 수 있는 내용이 다양하게 떠오를 겁니다. 특이한 이력이나,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부끄러워 말고 망설이지 말고 다 적어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나만의 특기가 캐스팅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전보다 인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력이 한 줄 한 줄 늘어날 때마다 작품 이력도 정리하는 게 필요합니다. 때때로 리포트 분량의 이력을 볼 때가 있는데, 가지고 있는 멋진 옷을 다 한 번에 입고 나갈 수 없듯이 이제 경력이 꽤 쌓여간다면 한 페이지에 담길 만큼만의 이력을 대표로 ‘선발’하시면 좋겠습니다. 단편, 연극, 광고, M/V, 영화, 드라마, 웹드라마 등등 버리기엔 하나하나 다 내 자식처럼 너무 소중한 경험들이지만, 프로필은 기본적으로 캐스팅을 위한 배우 본인의 PR(홍보) 도구이기 때문에 상세한 연대기를 모두 나열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배우로서의 본인의 본질을 보다 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력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생략할지 말지, 그 선별과 선택은 본인만의 권리입니다. 그래서 그 고민 끝에 정성 들여 작성된 필모그래피는 그 배우에 대해 생각보다 더 많은 점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나이 표기에 대한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국에서는 보통 나이보다 출생연도를 표기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정확한 생물학적 나이나 출생연도를 밝히기보다는, 연기할 수 있는 연령대를 표시하는 게 통상적입니다. 하지만 기타 국가들-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도 실제 나이를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꼭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캐스팅 진행 시 나이를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40대 중반 정도까지는 표기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느 나라든 나이가 들수록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건 비슷하더라고요.)
(*영문 스펠링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간혹 프로필 작성을 회사나 지인이 작성해 주는 경우에 영문 표기를 임의로 작성해서 여권상의 스펠링과 프로필 스펠링이 다른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계약서 서명이나 항공권 구매 직전에 당황하는 일이 생깁니다. 오디션 때 기입한 이름이 캐스팅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프로덕션에 한번 배포되고 나면 추후 정정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명(Stage Name)이라든가, 의도적인 게 아니라면 영문 스펠링 표기 꼼꼼한 확인 당부드립니다.)